"우리들의 뇌가 얼마나 기묘하게 감상하라. 재미있고 진지하다." -댄 히스 <스틱의 저자>

 

클루지를 읽은 유명한 아저씨의 한마디 평이다.

 

저 말 그대로 우리의 뇌는 엉망진창에 효율도 떨어진다. 

 

나는 이 책을 읽기 전까지 내가 바보가 아닐까라는 생각도 종종했다. 아래는 며칠 전 있었던 에피소드이다.

 

그저께였던가 집 밖을 나서는데 비가 엄청 오더라.  태풍이라던 거 같았다. 우산을 챙기러 집(6층)에 올라갔다가 다시 내려와서 역으로 걸어가는데 뭔가 허전하다. 우산을 들고, 핸드폰을 두고 나왔다. 솔직히 쪽 팔려서 누구한테 얘기도 못했다. (아 오해는 하지 말아 줬으면 좋겠다. 평소에 '이것보다는' 조금 더 똑똑하다.)

 

근데 <클루지>를 읽고 나니 왜 내가 저렇게 행동했는지, 왜 항상 깜빡깜빡하고 다니는지, 어제 먹은 저녁 메뉴가 생각이 나지 않는지에 대한 궁금증이 풀렸다. 그리고 남들도 나처럼 멍청할 확률이 굉장히 높다는 점도..

 

 

심리학 책, 클루지이다.
클루지. 개리마커스

 

  클루지

 

클루지란?

 

클루지란 공학자들의 표현으로 완벽하지 않은 엉성한 해결책을 말한다.

 

책에서 보여준 대표적인 클루지 사례는 아폴로 13호에서 제작한 대체 여과기이다. 캡슐의 산소 여과기가 제대로 작동하지 않았고, 승무원들은 양말 한쪽, 마분지, 절연 테이프로 임시 여과기를 만들었다. 그리고 살아남았다! 그 비싼 우주선에 양말로 만든 여과기라니 어이가 없지 않은가?

 

근데 더 놀라운 점은 우리의 몸과 정신은 이런 클루지 투성이라는 점이다. 신비스럽다고 믿었던 인체의 신비는 우주선에 양말과 마분지를 덧붙힌 건과 큰 차이가 없다.

 

신체적으로 봤을 때, 사람의 척추는 일자인데, 이는 직립 보행에 불리한 형편없는 구조이다. 만약 공학자를 데려다 놓고 2족 보행 모델을 만든다면 X자의 척추를 만들어 낼 것이다. 그런데 왜 우리의 척추는 하나일까? 

 

이유는 우리가 4족 보행을 하던 구조에서 2족 보행을 하는 구조로 변화했기 때문이다. 이를 저자는 '진화의 관성'이라고 표현한다. 사람은 진화를 맨 처음부터 다시 시작하기 보다는 이미 있는 것에 수정을 가하면서 진화하는 경향이 있다.

 

개리 마커스의 저서 클루지이다.
클루지

인간의 마음과 클루지

 

신체가 아닌 마음에서도 '클루지스러움'을 발견할 수 있는데 이는 저자가 '반사 체계'와 '숙고 체계'의 간격이라 불리는 것에 의해 나타난다.

 

반사 체계는 인간 선조들의 환경 적응에 따른 사고 체계이다. 인간은 오랜 세월 맹수 따위의 위협에 노출되어 있었고, 이런 맹수를 만나면 침착하게 전략을 짜기보다는 냅다 뛰는 게 생존에 유리했다. 반사 체계는 이처럼 빠르고 자동적으로 전개되는 사고이다. 

 

숙고 체계는 반사 체계의 반대되는 개념이다. 조금 더 합리적이려는 사고방식이며 조금 더 장기적인 관점으로 판단을 내린다. 

 

다이어트를 예시로 들자면 '지금 초콜릿은 먹고 싶다'는 반사 체계이며, '1달 동안 3킬로를 감량해야 하니 참겠어!'는 숙고 체계이다. 그렇다고 무조건적으로 숙고 체계가 항상 옳지는 않다.

 

차가 전속력으로 나에게 오는데 반사체계가 발동하지 않고 숙고 체계가 발동된다면?

 

음.. 아마 높은 확률로 죽을 것이다

 

이처럼 마음은 두 개의 체계의 대립으로 많은 오류를 만들어내곤 한다. 

 

A를 잘하는 사람이 B까지 잘한다고 생각하는 후광효과, 일정한 주장을 가질 때 반대되는 정보는 무시하는 인지적 편향 등의 다양한 심리적 작용이 예시가 된다.

 

"우리의 신념들은 기억의 장난, 감정, 정말로 아무 상관이 없어야 할 지각 체계의 변덕 등으로 오염되어 있다. <P.109>

 

선택과 결정에도 인간은 생각보다 합리적이지 않다.

 

한 연구에서 사람들에게 앞으로 6개월 안에 차를 사고 싶은 마음을 물어보았다. 이 질문을 받은 사람들과 그렇지 않은 사람들의 구매량은 약 두배 가량 차이가 났다.

 

합리성이란 관련된 데이터를 비교하고 평가할 것을 요구하지만 인간의 기억회로는 이런 목적에 전혀 맞지 않는다. 기억의 신속함과 맥락에 따른 판단은 위협적인 환경에서 생존을 위해 큰 도움이 되었을 것이다. 하지만, 현대에서 맥락에 따른 신속한 판단은 부채다.

 

클루지 극복하기

 

신은 나에게 내가 바꿀 수 없는 것들을 받아들이는 침착함과 내가 바꿀 수 있는 것들을 바꾸는 용기와 그 차이를 아는 지혜를 주었다.
                                                                                                                                                                                                                            <라인홀드 니버>

 

저자는 이런 엉망진창의 사고방식을 조금이나마 개선할 방법들을 소개한다.

 

 

  대안이 되는 가설들을 함께 고려하라

 

  문제의 틀을 다시 짜고 질문을 재구성하라

 

'비누는 99.4% 순수합니다'와 같은 문구가 있다면 '비누는 0.6% 무해합니다.'의 관점으로 바꿔봐라.

 

  상관관계는 인과관계가 아니다.

 

'큰 신발을 신는 사람들이 역사와 지리에 대한 지식이 더 많다.'는 '큰 신발을 사서 신으면 역사와 지리에 대한 지식이 더 많아진다.'와 다르다. 상관관계와 인과관계를 살펴라.

 

  표본의 크기를 잊지마라

 

  피로하거나 마음이 산란할 때는 되도록 중요한 결정을 내리지 마라

 

  언제나 이익과 비용을 비교 평가하라 (기회비용을 따져라)

 

  자신에게 거리두기

 

비합리성은 종종 시간과 함께 사라지는 반면에, 복잡한 결정은 시간을 두고 그것에 몰두할 때 가장 훌륭하게 이루어진다.

 

 

  마치며

 

뇌가 엉망이란 생각은 했지만 이건 도를 넘었다. 내가 다이어트에 번번이 실패하는 이유가 이런 이유일까.

 

합리적이지 못하고 본인만의 세계에 빠져 있는 사람을 사회는 '꼰대'라고 부른다. 어느 사회에 속해있어도 꼰대는 환영받지 못하는데 책을 읽고 나니 꼰대는 클루지 덩어리가 아닐까라는 생각이 든다. 그렇다면 과연 나는 꼰대일까? 꼰대가 되지 않을 방법은 무엇일까?

 

저자는 '클루지스러움'을 극복할 해결책을 같이 제시해준다.

 

이 중 하나인 기회비용을 따지는 방법은 내가 실제로 사용하고 있는 방법이고 효과가 좋다. 의사결정을 할 때 기회비용을 따지다 보면 내가 퍽 합리적인 사람이라고 느껴진다.

 

다른 방법들도 한번 시도해봐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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